누군가의 메모장

언니의 집에서 적은 일기

정말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. 일기를 왜 계속 안 썼을까 생각해 보면 그래, 귀찮았다. 그리고 일기에 조금 지쳤던 것 같기도 하고, 작년부터 점차 끌어 올린 에너지가 다른 곳에 쓰였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. 여러모로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동시에 단순하기도 했던 날들이었다. 행사가 또 한 번 시작됐고 끝이 났다. 아. 새삼 시간을 너무도 많이 지나쳐왔다. 내가 살아온 시간과 그저 흘려보낸 시간을 줄 세워놓고 그 간격을 차근히 어림해 본다. 그리고 또다시 깨닫는다. 그저 흘려보내기만 했다는 시간 또한 분명 그때의 내가 살아낸 순간이라는 것을.

복잡한 머릿속을 잠시 멈추고 지금의 내가 뭘 더 많이 해야 하는지 집중해야 한다. 뭐든 해내야 한다는 걸 안다. 나는 왜 작년 6월 어느 날의 일기에 올해 말이 기대된다고 적었을까. 그땐 그 말이 설레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부담이 된다.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 모습도 놀라며 만족했을 테지만 언제나 그랬듯 욕심을 부리게 된다.

인생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모르겠다. 그러니 인생인 거겠지.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러니 인생인 거겠지. 그래서 아름다운 거겠지. 그치만 또 고통스럽고. 삶의 고통을 인식한 이후 나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.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 고통에 민감해진다. 앎이라는 건 그런 거다. 깨닫고 나면 하염없이 발견된다. 마치 생전 처음 먹는 음식에서 익숙한 맛을 찾아내는 것처럼.

나는 평생 민감한 삶을 살 거다. 그래서 피곤하겠지만, 이쯤이면 덤덤해질 때도 되지 않았냐며 장점보다 단점을 느끼는 날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지만, 그럼에도 그렇기에 얻은 소중한 것들을 곱씹고 되새기며 그러니 이런 삶도 꽤 괜찮다는 걸 상기하며 살 거다.

2024년 4월 30일의 일기 발췌